
거창 현성산을 5월 8일 황사 먼지가 자욱한 날 올랐고 뒤늦게 블로그에 포스팅 한다.
10여년 전 현성산과 금원산의 연계산행을 계획한 적이 있었는데 그만 들머리를 잘 못 진입하는 바람에 현성산은
우회하고 덕분에 가볍게(?) 금원산만 오른 적이 있었다. 그 후 쭉 현성산의 존재를 잊고 있다가 10여년 만에
다시 현성산에 오르기에 이르렀다.
예전에는 현성산이 온통 바위투성이 암릉코스라 위험구간이 곳곳에 많아서 등반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하였는데,
1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은 현성산 등산로에 목재 데크 안전시설, 계단 등으로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이제는 초등학생도 손 쉽게 오를 수 있으면서도 암릉의 아찔한 스릴을 맛볼 수 있는 산으로 보통 금원산과 연계산행을 많이 하는데, 현성산만 등반한다면 거리도 비교적 짧아 예전에는 중상급 코스에서 이제는 초급코스라고 할 수 있다.
(2015년 신문자료 :거창군은 지난해에 이은 연차사업으로, 올해 국·도비를 포함한 사업비 1억4,000만원을 들여 미폭에서 정상까지 가는 1.7km 구간에 암릉, 경사지 등 등산객의 안전사고가 우려되는 위험 구간에 대해 데크계단 64경관, 데크로드 12경간, 목재난간 43경간 등 위험구간내 안전시설물을 설치하는 등산로 정비사업을 완료했다.)

미폭에서 현성산 정상 오른 후 서문가바위와 976봉 삼거리에서 두무골로 하산 문바위를 지나 원점회귀하였다.
거리는 총 7km가 안되는 것 같다...
현성산 퍼 온 자료
현성산은 금원산에 딸린 부속산으로 거무성 또는 거무시로 불려온 산이다. 성스럽고 높음을 뜻한 “감”의 한문표기로 검을 현(玄) 이 되어 현성산으로 된 것이다. 곧 감뫼-검산-검무성-거무시로 되어 검다의 한문식 이름 현성산(玄城山현)이 되었음을 알수 있다.
금원산, 기백산을 일군 능선과 같은 맥에 솟아있는 봉우리로서 기백산에서 금원산을 거쳐 북동으로 방향을 돌린 능선은 970봉, 686봉을 솟구치고 위천면에 들어서서 들판으로 사그러드는데 현성산은 위에 말한 970봉에서 남으로 휴양림(금원산 자연휴양림)관리사무소쪽으로 뻗어내린 암릉상의 최고봉이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가섭사지 마애석불이 있는 암릉상의 최고봉이 현성산이다.
이 산은 기백산과 금원산에서 못다 푼 흥을 현성산에서 다 풀어버리려는 듯 단애를, 슬랩을, 기암을, 폭포를, 암릉을 그 기슭과 산사면에 한껏 빚어놓았다. 현성산은 1300미터 대인 기백산이나 금원산보다 훨씬 낮으나 바위로 산전체가 철갑을 두른 듯하다. 산인상은 두 산과 확연히 다르다.
기백산에서 금원산으로 가는 길의 봉우리에는 바위와 암릉이 조금 있지만 금원산은 거의 육산이나 다름없는 산이다. 그러다가 금원산에서 지재미 골로 내려오면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현성산과 마주 보는 하산길 지능선의 치마바위는 거대하다.
지재미골에 내려서면 문바위가 마치 큰 함선처럼 골짜기 한 가운데 버티고 있고 가섭사위로 보이는 암릉은 위압적이다. 현성산 부근에 와야 비로소 바위잔치가 벌어지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유안청폭포등 바위와 암반이 많은 곳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그것은 육산에서 돌출된 부분일 뿐이다.
산행깃점은 이 암릉이 아니라 휴양림 아랫쪽 현성산의 지계곡에 있는 미폭이다. 미폭에서 에서 오른쪽 암릉으로 올라가면 본격적인 능선산행이 시작된다. 이 능선위쪽에는 기암들이 줄지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연꽃바위. 바위로 화한 연꽃이 능선위에서 막 개화하려는 순간같다.
금원산자락 아래 지재미골에서 바라보면 마치 한송이 고운 연꽃봉오리가 산정에서 피어올라 하늘을 떠받치는 듯한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곳에 산정이 되는 큰 바위들이 앉고 눕고 서면서 틈굴을 이룬다.
현성산 정상은 돔형의 바위로 이루고 있다. 정상에서는 기백산에서 금원산으로 이어진 장쾌한 능선이 눈앞에 조망되고 금원산-현성산으로 이어진 능선 뒤로는 덕유산과 백두대간이 보인다. 정상에서의 하산은 금원산으로 이어진 능선으로 내려가다가 안부에서 지재미골로 내려서는 코스이다. 널따란 계곡에 농가들이 4,5채 자리잡고 있는 분지형 골안이다.






































































1971년 7월 7일 보물 제530호로 지정되었다.
금원산(金猿山:1,353m) 자연휴양림 북쪽 골짜기에 있는 천연의 큰 바위굴 속 직립암벽을 얕게 파고 부조하였다. 효심이 깊은 고려 예종이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위해 새겼다고 한다. 가섭암은 이 근처에 1770년대까지 있던 절이다.
가운데의 본존불은 둔중하고 토속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머리 위에는 큼직한 육계(살상투)가 있고, 얼굴은 넓적하다. 코는 세모꼴로 뭉툭하며, 눈과 입은 작고, 귀는 길고 납작하다. 밋밋한 어깨에 신체의 볼륨이 약하고 법의(法衣)는 통견의(通肩衣)로, 간결한 옷주름이 겹쳐져 있다. 옷은 아랫부분이 짧아서 다리가 노출되었다. 양쪽 발은 특이하게도 발꿈치를 서로 맞댄 채 발끝을 양쪽으로 벌리고 있어서 부자연스럽다. 양손은 가슴 앞에서 모아 상품중생인(上品中生印)을 맺은 아미타불로 추정된다. 대좌 윗면에는 5엽의 앙련(仰蓮)이 있고 내부에는 3엽의 복련(覆蓮)이 표현되어 있다. 광배는 무늬 없이 돌출된 선으로 표현한 보주형(寶珠形) 두광배(頭光背)이다.
좌우 협시불은 본존불에 비해 여성적인 얼굴에 화려한 화관을 썼다. 원형 두광배에 대좌는 사실적인 연꽃무늬로 구성되었다. 체구는 길고 평평하고, 본존불과 기법이나 얼굴모습이 비슷하다. 다만 옷자락이 양옆으로 고사리처럼 뻗고 장식성이 많다. 특히 한손으로 옷자락을 잡은 자세는 삼국시대의 불상에서 보이는 표현이지만 이 불상은 삼국시대 불상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의 불상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신라 말기의 작품으로 추정했으나, 1989년 동국대학교 학술조사단이 왼쪽 협시불 옆 암벽에 새겨진 가로 70㎝, 세로 88㎝ 크기의 해서체 기록인 불상조상기(佛像造像記)를 발견하여 불상의 조상시기가 1111년(고려 예종 6년) 10월임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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