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정도 본격적인 산행생활을 했는데 그동안 500회 정도는 산행을 한 듯 하다.
그러나까 1년 중 거의 한달은 산으로 출근을 했다고 할까?
산림청 지정 100대 명산은 일부러 목표를 세우고 오르지는 않았는데 오랜기간 산행을 하다 보니
저절로 100대 명산이 다 올라지게 되었다. 덕숭산이 100대 명산 완등이다.
목표를 세우고 오르지 않은 탓에 100대 명산중에 5봉은 정상을 밟은 인증사진이 없다.
초창기에는 100대 명산 오르리라는 개념이 없었고 요즈음 같이 사진찍는 일이 생활화 되던 시절이 아니어서
그냥 무심코 지나쳤던 탓에...
덕숭산...왜 100대 명산인지 이해가 안가는 산이다 사찰 수덕사가 있어서 지정된 듯 한데
산세 자체는 그냥 평범한 마을 뒷산이다. 그리고 함께 연계산행한 용봉산은
블랙야크라는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자체적은 100대 명산이라 지정해 놓고 인증샷을 올리면
이벤트를 하는 산이다...
나는 이날 수덕사를 구경한 후 덕숭산에 가볍게 오른 후 하산하여 도로를 건너서 덕숭산과 마주하고 있는
용봉산에 올랐다.
사진은 많은데 요즈음은 무릅 때문에
산행횟수를 줄이다 보니 블러그에 대한 관심도 없어지고 해서
사진에 설명은 대부분 생략하고 중간 중간 퍼 온 해설자료 위주로 포스팅해 본다.
산행 코스는 수덕사입구 대형주차장에서 수덕사 경내를 두루 두루 관람한 후 덕숭산에 올랐고
하산은 동쪽 40번 국도쪽으로 하산 후 둔리저수지를 지나 가루실고개로 해서 용봉산에 올랐고 다시 용봉산 자연휴양림으로 하산을 하였다.
산행거리는 대략 12~3km 정도 되는데, 수덕사 구경과 덕숭산에서 하산길 잘 못 찾아 되돌아온 거리,
용봉산에서도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대략 15km 정도 걸린듯 하다.
아래 지도들은 덕숭산과 용봉산의 퍼 온 자료들이니 참조 바란다.
수덕사(퍼 온 자료)
서해를 향한 차령산맥의 낙맥(落脈)이 만들어 낸 덕숭산(德崇山)은 북으로는 가야산(伽倻山), 서로는 오서산, 동남간에는 용봉산(龍鳳山)이 병풍처럼 둘러쌓인 중심부에 서 있다. 이 덕숭산 자락에 많은 고승들을 배출한 한국불교의 선지종찰(禪之宗刹) 수덕사가 자리하고 있다. "백제는 승려와 절과 탑이 많다"라고 중국사서(史書)인 '북사(北史)' , '수서(隨書)', '주서(周書)'에 기록되어 있다. 그 문헌에 나타난 백제 사찰로는 흥륜사(興輪寺), 왕흥사(王興寺), 칠악사(漆岳寺), 수덕사(修德寺), 사자사(師子寺), 미륵사(彌勒寺), 제석 정사(帝釋精寺) 등 12개가 전하지만 현재까지 큰 규모를 유지하고 있는 사찰은 수덕사 뿐이다. 백제사찰인 수덕사의 창건에 관한 정확한 문헌 기록은 현재 남아있지 않으나, 학계에서는 대체적으로 백제 위덕왕(威德王, 554~597) 재위 시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수덕사 경내 옛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와당은 백제시대 창건설을 방증할 수 있는 자료이다. 수덕사의 고려시대 유물로는 충렬왕 34년(1308)에 건축된 대웅전과 통일신라 말기 양식을 모방한 삼층석탑, 수덕사 출토 고려자기, 수덕사 출토 와당 등 있다. 임진왜란으로 대부분의 가람이 소실되었으나 수덕사 대웅전은 다행히 옛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1937~40년 보수 당시 발견된 대웅전 동측 내부 전면에 기록된 단청개칠기 (丹靑改漆記)에 의하면 중종 23년(1528)에 대웅전 색채보수, 영조 27년(1751), 영조 46년(1770)에 대웅전 보수, 순조 3년(1803)에 대웅전 후면의 부연보수와 풍판의 개수 등 4차례 대웅전 보수가 있었음을 알수 있다. 1673년 조성된 수덕사 괘불과 18세기 제작된 수덕사 소종은 조선후기 수덕사의 꾸준한 불사활동을 보여주는 유물들이다.
* 주요문화재 : 수덕사대웅전(국보 제49호) 수덕사3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103호) 수덕사7층석탑 육괴정, 황하루, 근역성보관, 사리탑 외
* 전설
백제시대에 창건된 수덕사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람은 극히 퇴락이 심해 대중창불사를 하여야 했으나 당시의 스님들은 불사금을 조달하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묘령의 여인이 찾아와서 불사를 돕기 위해 공양주를 하겠다고 자청하였다. 이 여인의 미모가 빼어난 지라 수덕각시라는 이름으로 소문이 원근에 퍼지게 되니, 이 여인을 구경하러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중 신라의 대부호요 재상의 아들인 '정혜(定慧)'라는 사람이 청혼을 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이 불사가 원만성취되면 청혼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여인의 말을 듣고 이 청년은 가산을 보태어 10년 걸릴 불사를 3년만에 원만히 끝내고 낙성식을 보게 되었다. 낙성식에 대공덕주로서 참석한 이 청년이 수덕각시에게 같이 떠날 것을 독촉하자 '구정물 묻은 옷을 갈아 입을 말미를 주소서'하고 옆방으로 들어간 뒤 기척이 없었다. 이에 청년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하자 여인은 급히 다른 방으로 사라지려 하였다. 그 모습에 당황한 청년이 여인을 잡으려하는 순간 옆에 있던 바위가 갈라지며 여인은 버선 한짝만 남기고 사라지니, 갑자기 사람도 방문도 없어지고 크게 틈이 벌어진 바위 하나만 나타나 있었다. 이후 그 바위가 갈라진 사이에서는 봄이면 기이하게 버선모양의 버선꽃이 지금까지 피고 있으며 그로부터 관음보살의 현신이었던 그 여인의 이름이 수덕이었으므로 절이름을 수덕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여인을 사랑한 정혜라는 청년은 인생 무상함을 느끼고 산마루에 올라가 절을 짓고 그 이름을 정혜사라 하였다고 한다.
모든 사진 클릭하면 더 큰 사진이 열린다.
수덕사 입구 상가
수덕사 입구
수덕사 미술관
다보탑을 축소한 형태의 탑
환희대
수덕사 대웅전..뒤로 덕숭산 정상부가 보인다...
경내를 빠져나와 정상부 까지 짧은 등산로가 열린다....
중간 중간 사찰에서 건립해 놓은 암자나 불상들이 정상 바로 아래까지 이곳 저곳 산재해 있는데
사진의 설명은 생략한다.
잠깐 조망이 열리며 가야할 산 용봉산이 드러난다.
덕숭산 7부 능선에 있는 금선대(정해사)
해우소=쉽게 설명하면 변소...요즈음은 화장실이라고 부르지 아마?
산 정상부 바로 아래 개활지에 사찰에서 관리하는 채소를 재배하는 밭들이 보인다.
잠시 조망이 열리며 남쪽 평야지대의 조망이 드러난다. 앞에 뽀족하게 보이는 산은 백월산인듯 하다.
백월산 뒤로 오서산도 희미하게 보인다.
우측으로 보이는 산은 삼준산인듯 하다.
가야산의 위용이 드러난다.
가야산을 줌으로...저기는 아직 마답이다...언젠가 올라야 할 산.
덕산온천지대가 보인다.
중간 큰 건물이 리솜스파캐슬..
만공탑....퍼온 글이다.
덕숭산 정혜사 옆에 세워져 있는 만공탑은 근대의 대표적 고승 만공선사(1871~1946)의 사리탑이다.
일종의 묘탑 즉 부도인 이 사리탑은 신라하대부터 이땅에 선보이기 시작한 수많은 부도의 조형 역사끝에 가장 현대적인 감각을 지니고 만들어진 기념물이다.
사진에서 보듯 만공탑은 구형의 원상을 팔각기둥 세개가 떠받치고 그 아래엔 팔각기단을 둘렀다. 만공선사의 입적 후 후학들은 스승의 탁월한 깨달음의 경지를 형상화하는데 꽤나 고민했던 것 같다. 사리탑의 제작은 동경미술학교 출신 제자였던 박중은 선사에게 맡겨졌는데 그는 만공 월면과 삼보및 팔정도를 상징한 이 사리탑을 제작해냄으로써 스승의 은덕에 보답했다.
만공탑이 사리탑 제작의 일반적 형식인 팔각원당형을 외면하고 달과 같이생긴 구형의 원상을 탑신으로 채택한 것은 만공스님의 휘 일월면에 그 착암점을 둔 듯 싶다.
불교에서 달은 완성된 수행단계 혹은 여래의 넓고 깊은 덕에 비유된다.즉둥글고 가득찬 마음의 비유로 보거나 사물의 실상, 밝고 맑은 마음자리, 수행이 완숙된 인품으로 상징된다.
근대한국불교에서 만공스님은 어둠을 몰아내는 밝은 달 그 자체였다.
아무튼 1947년 세워진 만공탑은 우리나라 석조미술의 당당한 한 조류를이루는 사리탑의 조형형식에 새 장을 연 작품이며 `우리 나라 현대식 기념탑의 선구를 이루는'(최완수 간송미술관장)역작이다. 건립될 당시는 물론 최근에도 일부 불교미술연구가들로부터 왜색성향의 작품이라는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으나 현대적 감각이 수용된 최초의 사리탑인 점만을 부인하기힘들다.
이처럼 `앞서가는'조형미를 선보인 박중은 선사에 대해서는 아쉽게도 작품활동은 물론 생몰연대조차 알길 없다. 만공탑만이 `조각가'박중은이 유일하게 남겨 놓은 작품일지도 모른다.
드디어 정상...100대 명산 완등이다.
덕숭산
덕숭산은 호서(湖西)의 금강산(金剛山)이라고도 불리는 산으로 산 중턱에 수덕사가 있다. 수덕사의 대웅전은 현존하는 최고의 목조건물이다. 수덕산은 기암괴석이 풍부하여 바위들 이 사람의 두개골이나 노적가리, 사나운 짐승이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한 형상을 지닌 절묘한 형상을 지니고 있다. 절경으로는 원효봉과 석문봉, 덕숭산, 해태바위 등이 있다.
또한 수덕사를 비롯하여 정혜사, 만공탑, 여승당, 보덕사 등 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충의사와 덕산온천 등 명소가 있다. 수덕산은 수덕사 등 사찰산행과 온천산행을 겸할 수 있다. 등산코스는 코스가 짧아 가족들의 나들이 코스로도 좋다. 수덕사(修德寺)의 대웅전(大雄殿:국보 49호) 앞마당에 있는 삼층석탑, 대웅전 내부의 고 려벽화를 비롯하여 정혜사로 가는 중에 만공이 건립한 25척의 석불로서 머리에 이중의 갓을 쓰고 있는 미륵불입상(彌勒佛立像)과 만공을 추도하기 위해 세운 만공탑(萬空塔) 등이 있다.
어쩌다 보니 산림청 지정 100대 명산에 다 올랐구나..
모든 사진 클릭하면 더 큰 사진이 열린다.
덕숭산 동쪽 40번 국도쪽으로 하산길...가야 할 둔리저수지와 용봉산이 보인다.
수암산도 보인다.
하산길에 암자가 보이던데 암자 이름은 잊었다.
도로를 한참 걷다 보니 둔리저수지가 보이고 뒤로 방금 하산한 덕숭산이 보인다...저 산이 100대 명산이란다...
덕산 이씨? 돈들이 많은가 보다...
용봉산에 오르는 가루실고개에 세워진 이정표..쭉 건너면 내포신도시로 빠지고 우측으로 용봉산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열린다.
둔리저수지 뒤로 덕숭산 그리고 우측으로 가야산이 조망된다.
용봉산으로 향하는 등반로
용봉산 가는 등반로 좌측(동쪽)으로 내포 신도시가 계속 조망된다.
내포신도시(內浦新都市)는 대한민국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읍 신경리와 예산군 삽교읍 목리를 중심으로 조성 중인 신도시이다.
내포신도시의 충남 도청
중간 중간 멋진 바위들이 조망된다.
병풍바위 반대쪽 조망이다...뒤로 넓은 땅은 내포신도시...
전망대 조망 안내판
내포신도시를 볼 수 있는 전망대에서 수암산을 배경으로...
가야 할 용봉산 정상부가 보인다.
맨 좌측이 최고봉 중간이 노적봉 앞쪽은 악귀봉이다.
용바위
모든 사진 클릭하면 더 큰 사진이 열린다.
이건 무슨 바위인고? 바위 이름을 잊었다.
악귀봉
갈림길..
악귀봉에서 바라다 본 병풍바위
병풍바위를 줌으로.
악귀봉으로 오르는 등반로..누군가 대왕봉이라 페인트로 낙서를 새겨 놓았다...
저 낙서를 쓴 자는 등산객들은 물론이요 저 사진을 보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욕을 많이 얻어먹을테니 목숨도 길겠다.
퍼 온 사진...어딘지 못봤다.
사진 위 아래
용봉산의 바위들(몽땅 퍼 온 사진이다..지나면서 보기는 봤는데...제대로 찍은 사진이 없어 퍼온 사진으로 대신한다)
악귀봉에서 최고봉 사이의 바위들...이름이 붙여진 바위들을 모두 건성으로 보고 지나치는 바람에
퍼 온 사진으로 설명을 대신한다.
중간 중간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이것도 바위 이름이 있던데...몰라? 그냥 통과~
최영장군 활터쪽 조망
물개바위란다.
이 바위 이름도 몰러~
뒤로 수암산을 사이에 두고 좌측으로 둔리저수지와 가야산 우측으로 내포신도시가 조망된다.
다시 물개바위쪽,,,뒤로 내포신도시
뒤로 오전에 올랐던 덕숭산과 우측 뒤 전파탑이 있는 가야산이 조망된다.
의자바위 반대쪽을 찍은듯 한데 아니면 말고?
두꺼비바위 전망대로 향하는 쪽의 바위들
두꺼비바위 전망대..뒤로 악귀봉의 암봉들이 보인다.
맨좌측 두꺼비바위 뒤로 덕산 저수지와 가야산이 보인다. 멀리 수암산도 보이고...
두꺼비바위 설명....퍼 온 사진
노적봉 쪽의 바위들
솟대바위
보이는 정자가 최영장군 활터
좌측 악귀봉과 노적봉의 조망 조망 죄측 뒤로 희미하게 덕숭산과 가야산이 조망되며 우측으로는 내포신도시가 보인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큰 사진이 열린다.
파노라마...사진을 클릭해 보세요.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큰 사진이 열린다.
최고봉 쪽에서 바라다 본 파노라마. 좌측 악귀봉과 우측 최영 장군 활터쪽
정상
홍성에 위치한 용봉산은 높이는 낮지만 주변 전경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수석처 같다. 미륵불이 있는 미륵암을 지나 능선에 오르면 5형제바위, 공룡바위, 칼바위 등 즐비한 기암들이 조화를 이루고 바위군을 지나 20여분 내려가면 마애석불이 있는 용봉사가 있다. 가을철 단풍도 볼만하다.
용봉산은 바위산 답게 기암괴석이 기기묘묘한 형상을 빚어 여느 명산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다. 홍성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이 용봉산을 내세울 만큼 이 고장 사람들은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산이다.
용봉산을 낀 홍성 일대는 충절의 고향이라는 얘기답게 만해 한용운 선사, 백야 김좌진 장군, 최영 장군, 사육신의 한 분인 성삼문 등의 생가와 9백의총 등 위인들의 삶의 흔적과 백제 부흥의 마지막 보루였던 임존성 등 역사유적지가 도처에 남아있다.
용봉산의 좌우 중턱에는 고려시대의 고찰 용봉사와 마애석불, 미륵석불이 있다. 옛 문헌에는 영봉사라고 기록되어 있는 용봉사는 지금은 대웅전과 요사체 등 2동밖에 남아있지 않다.하지만 고려시대에는 절 크기가 아흔아홉간에 불도를 닦는 승려수가 천여명에 이를 만큼 큰 절이었다고 한다.
용봉산은 산세가 수려해 등산길로도 그만이다.용봉초등학교 뒷편을 따라 올라 상하리 미륵불을 구경하고 크고작은 봉우리를 휘휘 돌아 정상에 오른 뒤 용봉사 쪽으로 내려오면 두 시간쯤 걸리는데 산 아래 펼쳐지는 경관이 일품이다.
인기명산 100 [38위]
수덕사를 품고 있는 용봉산은 산세는 수려하지만 산이 낮아 산행지라기보다 나들이 코스 같아 특정 계절에 치우치지 않고 사계절 두루 인기 있는 산이다
최영장군 활터로 하산길.
최영장군 활터
모든 사진 클릭하면 더 큰 사진이 열린다.
활터 팔각정 안에서
퍼온글
[최영장군 활터]
용봉산의 물개와 두꺼비를 기대하며 먼저 최영장군 활터로 향해봅니다~ 최영 장군의 무예연습 장소였다는
용봉산! 홍성 땅은 예로부터 이름난 충렬지사들이 많이 배출된 곳이다,
사육신 성상문을 비롯해 백야 김좌진 장군, 만해 한용운 시인 등이 홍성 출신이다.
하산길에 바라다 본 정상부의 암봉들..이것도 만물상이라 부르는 것 같던데 확실히 모르겠다.
마치 작은 금강을 연상하게 한다..
용봉산 최고봉과 악귀봉이 보인다.
용봉산 자연휴양림으로 하산 완료.
퍼 온 사진
하산 후 바라다 본 용봉산..퍼 온 사진
'충청 경기 강원 등산기록 > 충청,경기도,수도권 산행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화산 조항산 (0) | 2019.02.25 |
---|---|
미세먼지 자욱한 예산/서산 가야산 (0) | 2018.04.20 |
포천 백운산(100대 명산 포천 백운산 등산지도) (0) | 2017.08.07 |
유명산(100대 명산 유명산 등산지도) (0) | 2017.06.19 |
괴산 막장봉(속리산 국립공원) (0) | 2017.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