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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청평사

섬돌7 2015. 3. 23.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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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는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 오봉산(五峰山) 기슭에 있는 절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新興寺)의 말사이다. 973년(광종 24) 영현선사(永賢禪師)가 창건하여 백암선원(白岩禪院)으로 불렀다.

이 절이 대찰의 면모를 갖춘 것은 1089년(선종 6) 과거에 급제하여 대악서승(大樂署丞)이 되었던 이자현(李資玄)이 이곳에 머물고부터이다.

이자현은 뜻하는 바가 있어 벼슬을 버리고 아버지가 세웠던 보현원으로 들어갔다. 당시 이곳에는 도둑과 호랑이와 이리가 들끓었지만 그가 들어오자마자 모두 자취를 감추었고, 자신은 문수보살의 진신을 두 번이나 친견하였다고 한다.
이 에 이자현은 모든 것이 맑게 평정된 산이라 하여 산 이름을 청펑산(淸平山), 문수 보살의 큰 지혜로 불법의 가장 요긴한 뜻을 깨달아 얻는 도량이라는 뜻으로 절 이름을 문수원(文殊院)으로 바꾸고, 많은 건물과 견성(見性), 양신(養神), 칠성(七星), 등운(騰雲), 복희(福禧), 지장(地藏), 식암(息庵), 선동암(仙洞庵) 등 여덟 암자를 지었다.

 

1327 년(충숙왕 14) 원나라 황제 진종(晉宗)의 황후는 불경과 함께 돈 만꾸러미를 시주하여, 그 이식(利息)으로 황태자와 와자들의 복을 빌고, 그들의 생일에 승려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반승(飯僧)을 행하도록 하였다. 이 때 그 내력을 기록한 비를 세웠는데, 현재 비는 남아 있지 않지만 '익재난고(益齋難藁)'권7과 '동문선(東文選)'등에 「유원고려국청평산문수사시장경비(有元高麗國淸平山文殊寺地藏經碑)」라는 제목으로 전문이 수록되어 있다.

 

1367년(공민왕 16) 당대의 고승 나옹(懶翁) 스님은 공민왕의 청에 따라 2년 동안 머물렀으며, 여덟암자 중 복희암에서 특히 많은 시간을 보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김시습(金時習)이 승려가 된 뒤 이 절의 단향원(端香院)에 살았으며, 그 때 지은 시 6수가 '매월당집'에 수록되어 있다.

1555년(명종 10) 당시의 판선종사(判禪宗事) 허응 보우(虛應普雨) 스님은 왕명에 따라 청평사 주지로 부임한 다음, 2년 여에 걸친 대대인 중창불사를 이룩하였다.

스님은 능인전(能仁殿)만 본래의 것을 조금 보수하였을 뿐, 극락전을 비롯하여 회전문(廻轉門) 등 모든 건물을 새로 지었고, 절 이름을 청평선사(淸平禪寺)로 바꾸었다.

 

현재 그 때의 건물로는 보물로 지정된 회전문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일본 고메이사(光明寺)에는 1562년 보우 스님이 명종과 인순왕후(仁順王后), 문정왕후(文定王后) 등 궁중 일가의 성수를 기원하며 조성한 지장보살탱이 있다.
1950년 6.25동란으로 국보로 지정되었던 극락전을 비롯하여 구광전(九光殿)과 사성전(四聖殿), 대방, 산신각, 요사채 등이 소실되었다.
그 뒤 한동안 폐사처럼 남아 있던 이 곳에 공철(空徹) 스님이 1977년 극락보전과 삼성각을 중건하였고, 향봉(香峯) 스님은 1979년 해탈문과 적멸보궁을, 서호(西昊) 스님은 1984년 요사와 청평루(淸平樓)·서향원(瑞香院)을 다시 지었으며, 1988년 석진(石眞) 스님이 대웅전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화재로는 보물 168호인 회전문과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8호인 삼층석탑, 진락공부도(眞樂公浮屠)·환적당부도(幻寂堂浮屠) 등이 있다.

 

 

오봉산에서 바라다 본 청평사 조망

 

 

 

 

 

 

회전문(廻轉門)-보물 제168호

 

조선시대 세워진 청평사의 중문으로 사찰의 두 번째 문인 사천왕문을 대신한다.  앞면 3칸·옆면 1칸의 주심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간소한 아름다움이 있으며 16세기 건축 양식의 변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는 역사적인 건물이다.

 

회전문이라고 해서 호텔입구에 있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문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불교에서 회전(廻轉)이란 말의 본뜻은 불전의 경전을 넣어두었던 윤장대를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고려정원(高麗庭園)의 영지(影池)

 

이자현이 조성했다는 고려정원은 청평사 사역의 거의 모든 곳에 걸쳐서 펼쳐져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우리나라 정원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일본 교토(京都) 사이호사(西芳寺)의 고산수식(枯山水式) 정원보다 200여 년 앞선 것이다.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영지(影池), 영지에서 400m쯤 떨어진 청평사 계곡 하류에는 정원조성용 암석 및 석축이 있으며 그곳에서 다시 2쯤 떨어진 상류에는 이자현이 새긴 '청평식암(淸平息菴)’이라는 각자(刻字)가 새겨져 있어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 영지 중심의 대규모 고려 정원이 형성되어 있다.

또한 구성폭포에서 식암에 이르는 2㎞의 , 9,000여 평의 아주 넓은 지역에는 계곡을 따라 주변의 자연경관을 최대한으로 자연스럽게 정원 안으로 끌어들여 영지에 연결시켰으며, 주위에 정자와 암자 등을 세우는 등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여 선()을 익히는 정신수양의 도량답게 짜임새 있는 구성을 보이고 있다.

1981년 조사단의 지표발굴 및 측량조사에서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연못인 영지(影池)와 거기서 400m쯤 떨어진 청평사 계곡 하류에서 정원 조성용 암석 및 석축이 발견된 바 있다.

 

 

 

김시습이 은거했다는 세향원터에 세워진 누각이다

 

                              유객(有客:나그네)       

                                                  김시습

 

         有客淸平寺(유객청평사)  청평사 찾아온 나그네가 있어

         春山任意遊(춘산임의유)  봄 산을 한가히 노니노라

         鳥啼孤塔靜(조제고탑정)  새는 지저귀지만 외로운 탑은 고요하고

         花落小磎流(화락소계류)  꽃이 떨어져 작은 개울에 흘러가네

         佳菜知時秀(가채지시수)  맛있는 나물은 제 때를 알아서 돋아나고

         香菌過雨柔(향균과우유)  향기로운 이끼들은 비를 맞아 부드럽네

         行吟入仙洞(행음입선동)  시를 읊으며 신선이 사는 마을에 들어서니

         消我百年憂(소아백년우)  백년 묵은 근심이 사라져버리네

 

삼층석탑

 

 

구성(九聲)폭포

 

 

거북바위

 

 

 

 

 

상사뱀과 공주의 전설이 서려있는 공주상

 

 

청평사에는 오래전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중국 원나라 순제의 딸은 매우 아름다웠기에 궁중을 출입하는 자들은 하나같이 연정을 품고 있었지만 감히 마음을 표하지는 못하였다.

말직의 청년 관리 한 명도 공주를 매우 사모하며 괴로워하다가 상사병으로 죽고 말았다.

어느 날 낮잠에서 깨어난 공주는 몸이 이상하여 살펴보니, 난데없이 뱀 한 마리가 자기 몸을 휘감고 있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하였다. 공주를 사모했던 청년의 혼이 상사뱀으로 변한 것이었다.

뱀 은 밤이고 낮이고 떨어질 줄 몰랐고, 놀란 황제는 의원들을 불러 갖가지 처방을 해보았지만 상사뱀은 꼼짝도 하지 않아 괴워워하던 공주는 점점 야위어만 갔다. 영험 있는 사찰을 순례하며 기도를 드려보라는 권유에 공주는 중국 천지를 다 돌아다니다가 고려 청평사까지 오게 되었다.

청평천을 건너 청평사의 회전문 앞에 이르렀을 때 상사뱀은 공주가 걸음을 걷지 못하도록 요동을 쳤다.

10 여 년 동안을 함께 있었지만 한 번도 이와 같은 일은 없었으므로 공주는 이상히 여기며 타일렀다. “나는 지난 10여 년 동안 한 번도 너를 거스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내가 좋아하는 절을 구경하지 못하게 하느냐? 들어가기 싫다면 잠깐만 여기에 떨어져 있어라. 속히 절 구경을 하고 돌아와서 너와 함께 가겠다” 이 말을 들은 뱀은 곧 공주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고, 10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된 공주는 구성폭포에서 물를 맞으며 몸을 씻고는 절 안으로 들어갔다.

법 당과 절의 이곳저곳을 살피던 공주는 가사(袈裟)를 만들기 위한 비단과 바늘이 널려 있는 방을 발견했다. 그리고 문득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옷인 가사를 만들고 싶다는 충동에 이끌려 방으로 들어가 바느질을 했다. 그러고 나서 공주는 뱀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는데, 뱀이 다시 공주의 몸을 감으려 하는 순간 뇌성벽력과 폭우가 쏟아지면서 벼락이 떨어져 상사뱀을 새까맣게 태워 죽여 버렸다.

마침내 뱀으로부터 해방된 공주는 후련하기도 했지만 자신을 사모하다 죽은 상사뱀이 불쌍해 정성껏 묻어주고 청평사에서 머무르다 구성폭포 위에 석탑을 세우고 귀국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청평사 가는 길

 

 

청평사 가는 길은 2가지이다. 육로(陸路)로 가는 길과 소양호에서 배를 타고 수로(水路)로 가는 방법이다

소양호에서 배를 타고 약 15분이면 청평사 입구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순탄한 개울길을 따라 약 30분이면 닿는다.그러나 갈수기에는 배가 가까이 갈 수 없어 육로보다 걸어가는 거리가 조금 더 길어질 수 있다

 

육 로로 가는 길은 춘천에서 양구쪽으로 가다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배후령터널(길이 5,046m)을 지나 조금 가면 청평사 이정표가 보인다. 안내판을 따라 우회전하여 꼬불꼬불한 백치고개를 넘으면 청평사 주차장에 다다른다. 백치재가 조금 높고 커브가 심한 편이나 관광버스도 드나든다

주차장 바로 아래에서 소양호 청평사 선착장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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