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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도덕산.

섬돌7 2018. 5. 5. 12:15

대구의 팔공산 자락으로 많은 봉우리가 있는데 그 중 해발 660m의 도덕산이 있다.

지역적으로는 대구시와 경북 칠곡군의 경계지점에 있는 산이기도 하다.

대구 어디에서나 쉽게 눈에 뜨이는 산이기는 하지만, 대구 사람들도 잘 모르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높지는 않지만 대구에서는 비교적 외곽지역에 속하다 보니

마을 뒷산 같이 등반로가 열려 있기는 하지만 찾는 이가 거의 없는 산이다.

대구에 이러한 산도 있다는... 소개하는 차원에서 포스팅하기로 한다.


도덕산 퍼온 글


도덕산 퍼 온 사진



도덕산은 고려 태조 왕건 시대에 이름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왕건이 한 마을을 지날 때 경전 읽는 소리가 줄기차게 들려 마을 이름이 연경(硏經)이 되었다. 

유학자가 많이 산 마을 뒷산은 도덕심이 높다고 해서 도덕산이라 불렀다. 

그 산에 있는 암자가 도덕암. 도덕암은 고려 광종이 찾아 마신 후 속병이 나았다는 샘 어정약수(御井藥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800살이 넘은 모과나무도 있다.

산행 후 인근 대단지 아파트 단지가 있는 무태(無怠) 마을에는 시설 좋은 사우나와 맛난 식당이 많다. 

무태 마을도 왕건이 지나가다가 새벽부터 일하는 마을 사람들을 보고 '게으른 사람이 없다'고 일컬어 마을 이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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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코스...팔공산 파계사주차장~ 송정동~팔공산한마음주유소 앞~연화사~도덕산 등반로~

도덕산 정상~도덕암~송림삼거리~송림사~동명저수지~동명사거리~동면면사무소...약 1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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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파계사 지구에서 바라다 본 도덕산


도덕산 입구로 팔공산 한마음주유소 건너에서 바라다 본 도덕산


연화사가 보인다...요양원도 함께 있다.



연화사 우측으로 등반로가 시작된다.


도덕산이 625때 격전지였나 보다...산에 불발탄이나 유탄이 있을 수 있다는 경고문이 써 있다.


제한구역...예전에는 입산을 통제했던 모양이다.


이제는 시들기 시작하는 각시붓꽃...등반 도중 자주 발견되었지만 그나마 시들지 않은 꽃을 찾아 사진으로 담아보았다.


구슬붕이


이건 오랜만에 야생에서 보는 꽃이다...윤판나물..어린 순은 나물로 먹는단다.


윤판나물..꽃이 예쁘다.


이건 잘 모르겠다...대극과의 개감수 같은데....


등반로 중간에 벤치도 있고 하지만...거의 사람이 찾지 않는 산이다 보니 썰렁하다.


말발도리인듯 한데 매화말발도리인듯 하기도 하고 바위말발도리인듯 하기도 하고....잘 모르겠다.



정상부에서 팔공산이 조망된다..이날 날씨가 흐려서 정상부는 구름에 가려져 있다.


시들어 버린 병꽃나무


드디어 도덕산(660m)정상




둥굴레가 지천이다.



씀바귀 종류인듯?


정상에서 도덕암 쪽으로...



조팝나무..종류가 많은데 이건 산조팝나무이다.




으아리꽃

 퍼온 글 야생에서 가장큰 꽃이 으아리꽃이다. 연꽃처럼 순결스러운 느낌이 든다.

 특히 여름철 우리네 어머님들이 여름철 한삼모시적삼을 입은 모습이 연상된다.  



드디어 도덕암이 보인다.




칠곡의 도덕암(퍼온 글)


* 칠곡의 유명한 나한기도처, 도덕암(칠곡) *
팔공산은 대구, 영천, 경산, 칠곡, 군위 등 경북 중부를 아우르는 한국불교의 성산이다. 때문에 팔공산 권역 내의 대부분의 사찰이 산명을 당연히 ‘팔공산’이라 쓰고 있다. 그러나 칠곡의 도덕암은 예외이다. 분명 팔공산 도덕암이 분명할 터인데 도덕암은 독자적으로 사명에서 그 이름을 따 ‘도덕산(道德山) 도덕암(道德庵)’이라 지어 부르고 있다. 도덕암은 신라 눌지왕 대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기록은 알 수 없고, 고려 광종 19년(968) 혜거국사(惠居國師)가 칠성암(七星庵)이라는 사명을 가지고 중수했다는 사적만이 남아있다. 
 
훗날 조선 철종 4년 몽계스님에 의해 ‘도덕암’이라는 사명을 고쳐부르고 사명에 따라 도덕산이라고 바꿔 부르게 된 것이다. 도덕암에는 조선 철종 13년에 그려진 몽계당 선의대사(夢溪堂 善誼大師)의 진영이 보관되어 있고, 조선 후기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16나한상이 나한전에 봉안되어 있는 것이 눈길을 모으고 있는데 현재 문화재 지정신청을 해놓은 상황이라고 한다. 
 
특히, 도덕암은 이 16나한상의 존재로 인해 칠곡에서는 유명한 나한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도덕암에서도 나한기도만을 올리는 신행단체인 ‘나한봉참회’가 운영되고 있다. 또한, 고려 광종이 이곳에 와서 도덕암(道德庵) 약수를 마시고 지병이 나았다는 일화가 전해오는 ‘어정수(御井水)‘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도덕암이 팔공산이 아닌 도덕산(道德山)에 자리한 것이라고 내세우는 ‘자존’은 ‘암자답지 않은’ 유구한 내력을 지니고 있음도 하거니와, 예부터 선지식을 많이 배출해 ‘도덕암’이라고 지었다는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할 것이다. 
 
* 도덕암의 설화 및 역사 *
도덕암은 신라 19대 눌지왕 대(417-458) 창건설이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고려 광종 19년(960)에 혜거국사(惠居國師)가 대중수하여 칠성암(七星庵)이라고 이름 붙였다는 사적이 전해온다. 
 
당시 고려 광종은 혜거대사를 왕사로 모시려고 여러 번 사람을 보냈으나 번번히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광종이 친히 어가를 몰아 지금의 도덕암으로 와 왕사로 모실 것을 권했으나 또다시 거절당했다. 이에 광종이 돌아가려 가자 대사는 ‘이것도 속세의 인연’이라며 며칠간 쉬면서 속병을 고치시라 했다. 그래서 광종은 여기에서 3일간 쉬면서 절에 있던 샘물을 복용했더니 씻은 듯이 속병이 나았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은 뒤로 이 샘물을 ‘어정수(御井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아직도 극락보전 뒤편에 샘물이 남아있다.
 
이 일로 광종은 절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 이 절을 칠성암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후세사람들이 어정수를 약물이라 부르고 있다. 지금도 도덕암을 찾는 불자들은 으레 이 어정수를 꼭 복용한다고 한다. 
 
도덕암의 이 후의 사적은 조선시대 이전까지 전하는 바가 없고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의 병화를 입고 광해군 12년(1620) 법거선자(法居禪子)가 중수했으며 인조 10년(1632)에 훈장선사(訓?禪師)가 나한전을 건립했다. 또 효종 4년(1653) 기성대사(箕城大師)가 중수했다고 전한다.



[Daum백과] 도덕암(칠곡)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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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암에서 심어 놓은 화초로 꽃이름은 잘 모르겠다.


금낭화..요즈음은 관상용 화초로 많이 재배를 하고 있다...예전 야산에서도 가끔 봤었는데....






도덕암에서 송림삼거리로 향하는 도로


미나리냉이


멀리 동명저수지가 보인다.


지칭개



아카시아꽃




송림사 입구


송림사..


퍼온 글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 가산() 남쪽 기슭에 있으며, 동화사()의 말사()이다. 1092년 대각국사 의천()이 중창하였고, 몽골의 침입으로 폐허화하였다. 1597년과 1858년 두 차례 중창하였으며,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과 명부전(殿) 및 요사채가 있다.

대웅전 앞에는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벽돌탑인 송림사 오층전탑(보물 189)이 있다. 1959년 이 탑을 해체 수리할 때 순금제 불감() 및 옥과 금으로 된 보리수 형태의 공예품과 불사리 4과가 나왔다.


연혁[편집]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진흥왕 5년(544년) 중국 (晉)에서 귀국한 승려 명관(明觀)이 진에서 가져온 불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처음 절을 지었고, 경내의 전탑도 그때 세웠다고 알려져 있다. 최치원의 《신라수창군호국성팔각등루기》에 등장하는 「마정계사(摩頂溪寺)」는 바로 송림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비정된다.

고려 선종(宣宗) 9년(1022년) 대각국사(大覺國師)에 의해 중창되나, 고종 22년(1235년)에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고, 고종 38년(1251년)부터 충숙왕 9년(1322년)까지 보감국사(寶鑑國師)가 주석하였다. 1970년 황수영 박사가 송림사에서 나온 개인 소장(현재는 소재지 미상)의 청동 향로 (높이 24.1cm)의 명문을 조사한 결과 『지정 2년(1342년)명 송림사향(至正二年銘 松林寺香)』이라고 되어 있어 고려 시대에 봉안된 것임을 추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조선 중기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송림사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데, 이는 조선 중기 절의 힘이 미약했음을 추정하게 한다. 송림사는 정유재란(1597년)때 소실되었다가 숙종 12년(1686년) 승려 기성(箕城)이 중건하였으며, 철종 9년(1858년) 영구 대사에 의한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제 시대의 《한국사찰전서》에는 절의 위치 외에 다른 자료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1950년 이전의 사찰 근처에 살았던 현지 노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송림사에는 대웅전과 명부전 그리고 전탑이 전부였으며, 대웅전 앞에는 가 매여 있었다고 하는 증언이 있다.

2013년 대웅전의 전면 해체 보수, 선열당 보수, 설법전 단청공사 등의 작업이 완료되었다.

주요 건물[편집]

명부전
삼천불전
삼천불전에 봉안된 불상 가운데 석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2009년에 보물 제1606호로 지정되었으며, 복장 발원문을 통해 효종 6년(1655년) 조각승 도우가 조성한 불상임이 확인되었다. 2012년 12월 17일 새벽 삼천불전에 들어온 괴한이 불전에 봉안된 석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가운데 아미타여래상 옆에 있던 지장보살상과 관음보살상을 고의로 넘어뜨려 불상의 도금이 벗겨지고 관음보살상의 화관이 훼손되었으며, CCTV 분석과 지문 대조 작업을 통해 범행 하루 만에 검거되었다. 범인은 43세의 남성으로 예비승려였다.
대웅전
송림사의 건물에 관한 기록은 효종 8년(1657년) 중수 당시에 작성된 《팔공산송림사대웅전불상조성이필봉안기》(八空山松林寺大雄殿佛像造成已畢奉安記)와 영조 51년(1775년)의 《대웅전중수기》, 철종 1년(1850년)에 제작된 《칠곡송림사대웅전중수상량문》(漆谷松林寺大雄殿重修上梁文) 등이 있는데, 이 기록들에 의하면 선조 30년(1597년)에 소실된 것을 1657년 중창하였고 그 후 1755년 1850년에 중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17세기 중후반의 한국 불교건축에서 맞배지붕에 다포식 주불전 건물이 일반화되었는데, 송림사 대웅전은 이에 속하는 대표적인 건물 가운데 하나이다. 면적 139.44m2. 대웅전 안에 봉안된 목조석가삼존불좌상(木造釋迦三尊佛坐像)은 효종 8년에 조성된 것으로 2009년 3월 5일 보물 제1605호로 승격되었다.
대웅전의 현판은 숙종의 어필로 알려져 있다.
송림사 5층 전탑
보물 제189호. 9세기 신라의 건축물로 전고 16.13m, 기단 폭 7.3m의 전 및 화강석으로 조영된 탑이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상륜부까지 온전히 보전되어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다.
본래 전탑의 규모는 현존하는 규모보다 더 작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경내에 있는 《팔공산 송림사 유적비》에는 1959년 송림사 전탑의 해체 복원 당시 현재보다 훨씬 좁은 폭 4.5m 정도의 기단 석축이 발견되어 여러 차례의 해체복원 과정에서 외형이 많이 변모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었다. 진신사리 4과가 청유리병에 봉안되어 있었고, 연꽃무늬를 새기고 순금을 상감한 진신사리감(龕)과 청자로 만든 진신사리감, 옥지금엽보리수, 침향 9개, 은귀걸이 17개, 나무 구슬 1개, 청옥, 백옥, 수정, 유리(琉璃), 등 옥구슬 26개가 나왔으며, 발원문도 있었지만 햇빛을 보는 순간 탄산(炭散)되어 알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유물은 현재 보물 제325호로 지정되었으며 국립대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합실 안에는 조선 시대 작품인 본불과 파손 석불, 동불이 각각 2구 있었다고 하며 2층의 옥개에는 금동방형 사리기를 비롯하여 유리배, 수목형 금구, 옥류 등 찬란한 유물이 발견되었고 상륜부 전탑 내에는 화려한 고려청자 합자가 발견되는 등 시대를 달리하는 유물이 각 층에서 발견되어, 적어도 고려 시대에 상륜부가 해체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출토 유물 가운데 목불과 진신사리 4과는 탑에 다시 봉안되었다.
나한전(응진전)
기성대사비각(제1부도전)




송림사 전탑 

퍼온 글

신라의 고찰로 알려진 송림사()에는 통일신라 말~고려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오층전탑이 남아 있다. 1959년 이 전탑을 해체·수리할 때 2층탑신과 5층옥개석() 윗면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고, 4층탑신 안에서는 불경을 납입한 흔적이 있는 석함이 발견되었다.


















동명저수지

퍼온 글

동명 저수지의 수계는 낙동강이며 수혜 지역은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와 대구시 북구 학정동이다. 규모는 총 저수량 1,451천㎡, 유효 저수량 1,451천㎡이다. 동명 저수지는 칠곡군에 소재한 저수지 중 저수량의 규모면에서 지천 저수지, 금화 저수지 다음으로 크다. 유역 면적 2,660㏊, 만수 면적 33㏊, 제당 체적 67,320㎡, 제당 연장 408m, 제당 높이 12.5m, 제정 폭 6m에 달한다. 현재 관리는 한국 농어촌 공사 칠곡 지사에서 맡고 있고 있으며, 시설 관리 직원은 2명이다. 홍수 조절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수위 조절 게이트는 롤러게이트 형식이다. 대구·경북 지역의 낚시꾼들 사이에 낚시터로 많이 알려져 있다.